설립 초기
1863년 뉴욕시의 사업가 몇 명이 설립한 내셔널 유니언 생명 상해 보험회사(National Union Life and Limb Insurance Company)는 1864년 7월에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보험 상품은 남북전쟁에 참전한 선원과 병사의 전쟁 관련 장애 보험이었습니다. 시작은 힘들었습니다. 1864년 말 내셔널 유니언의 계약 실적은 생명보험 17건과 사고보험 56건뿐으로, 뉴욕주에서 영업하는 27개 생명보험회사 중 꼴찌였고, 1,400달러의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5년간 힘들게 사업을 하면서 몇 차례의 구조 개편과 상호 변경이 있고 난 뒤에, 제임스 R. 다우(James R. Dow, 의사) 사장과 이사회는 상해보장보험을 포기하고 생명보험에만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그에 따라 메트로폴리탄 생명보험 회사(Metropolitan Life Insurance Company )가 탄생했습니다.
1868년 3월 24일 메트라이프생명(MetLife)이 영업을 시작했던 시기는(바로 그 날 소수의 보험 계약을 체결함) 전화기가 아직 발명되지 않았고, 전등도 아직 많이 보급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미국 인구는 약 3천 7백만 명이었고, 미국은 37개 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메트라이프생명 본사는 방 두 개짜리로, 직원 6명에게는 충분한 공간이었습니다.
적자생존
새로운 사업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1870년대 초에 시작된 심각한 사업 침체로 뉴욕주에서 영업하던 70개의 생명보험 회사 중 절반가량이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설립한지 오래 된 대형 생명보험 회사만이 강세를 보이며 살아남았습니다. 해마다 계속되는 신규 보험 계약 감소 때문에 사세가 점점 위축되다가 1870년대에는 최저점에 이르렀습니다.
1879년에 메트라이프생명의 조셉 F. 냅(Joseph F. Knapp) 사장은 영국으로 관심을 돌렸는데, 영국에서는 “산업” 또는 “노동자” 보험 상품이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미국 보험회사들은 산업 보험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집마다 방문하면서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매주 5센트 또는 10센트의 보험료를 수납하는 Agency 인력을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드는 경비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메트라이프생명 Agent의 등장
영국의 Agent를 초빙해 미국 Agency 인력을 교육하면서, 메트라이프생명은 신속하게 영국식 판매 기법을 미국에 들여오는 데 성공했습니다. 1880년이 되자 회사는 하루에 700건의 신규 산업 보험 계약을 체결할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급속하게 계약이 늘어남에 따라 판매 비용이 내려갔고, 새로운 판매 기법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메트라이프생명의 Agent는 회사 성장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탄탄한 Agency 모델의 확립
메트라이프생명은 매뉴얼을 개발해서 Agent가 고객의 집을 매주 같은 시간에 방문해서 친근하게 접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보험료를 수납하면서 보험 Agent는 고객의 문젯거리, 걱정거리, 희망 사항 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이러한 접근 방식이 아주 성공적이어서 메트라이프생명은 1909년경에는 보유계약액 측면에서 미국 최대 생명보험 회사가 되었으며, 이러한 선도적인 지위는 북미에서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여정
메트라이프생명은 보험 계약이 더 간소하고, 스마트하고, 고객 중심으로 설계되도록 업무 방식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든든한 우리의 도움으로 고객은 자신 있게 세상을 헤쳐 나가면서, 인생 여정에서 만나는 모든 어려움에 대비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40여 개 나라에 진출해서 미국, 일본, 중남미, 아시아, 유럽, 중동 등지에서 보험 업계를 선도하고 있습니다.